연예인 몽골 제국의 미얀마 정복 -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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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4-05-0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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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Southeast Asia_ Every Year.mp4_snapshot_03.11_[2023.11.26_13.49.28].jpg 몽골 제국의 미얀마 정복 - 1



13세기, 동남아시아 역사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제국들은 잇달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수마트라의 스리위자야 제국은 촐라의 공습으로 와해됐다. 자바의 크디리 왕국은 신흥국 싱아사리로 대체됐다. 참파는 크메르 제국과의 전쟁으로 멸망했으며, 승리한 크메르조차 오랜 전쟁으로 전국이 황폐해졌다. 그나마 평온한 대월마저 쩐 왕조의 역성혁명으로 전대미문의 학살극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미얀마의 첫 통일 국가인 버간 제국 역시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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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5년, 버간 제국의 황제 나다웅먀가 죽고 그의 아들 챠스와가 새 황제로 즉위했다. 막 제위에 앉은 그의 앞에는 두 가지의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는 동남아시아 전역을 막론한 무역망의 쇠퇴였고, 두 번째는 사찰들의 과도한 토지 점유였다.


앞에서 언급했듯 당대 동남아시아는 이전 세대의 거인들이 연달아 몰락하는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이로 인해 동쪽으로는 중국에서 서쪽으로는 비잔티움에 이르는 해상 비단길은 그 기능을 정지했다. 국고의 수입 대부분을 무역으로 충당하는 버간 제국에 있어 이것은 악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사찰의 토지 점유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문제였다. 사찰 소유의 땅은 면세 특권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버간의 역대 황제들은 독실한 신앙심, 혹은 황권 강화라는 목적을 위해 위해 수많은 파고다와 토지를 보시했고, 그것이 수백 년간 누적된 지금 그로 인한 세금 누수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결국, 요점은 돈이 없으니 돈 나올 구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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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스와는 결심했다. 국제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어도 사찰의 토지 점유는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왕실이 이전에 사찰에 하사했던 모든 토지를 환수한다는 칙령을 반포했다. 이 어명대로만 집행된다면 제국은 적어도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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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나랏님이 우리 절의 땅을 몰수하신답니다. 신성한 불교국가에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Screenshot 2023-11-26 at 14.11.24.png 몽골 제국의 미얀마 정복 - 1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님들을 박해하다니, 이런 극악무도한 폭군이 다 있나!"



하루아침에 땅을 도둑맞게 생긴 승려들은 황제의 명령에 극렬히 반발했다.


버간은 독실한 불교 국가였고, 사찰과 승려들은 국가의 스승으로 공경받는 위치를 점유했다. 하물며 사찰들은 그들이 축적한 부만큼 강대한 영향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경전 암송이 취미일 만큼 독실한 불교도인 차스와는 그가 사랑하는 백성들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여론의 압박에 굴복하여 칙령을 철회했다. 이로 인해 황실의 위엄이 땅에 떨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실의에 빠진 챠스와는 태자 우즈나에게 정무를 모두 위임한 채 은둔했다. 그러나 우즈나 역시 음주와 사냥에 빠져 국정을 돌볼 의지가 없었고, 권력은 다시 대신들의 필두인 승상 야자틴쟌에게 넘어갔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챠스와의 붕어와 우즈나의 즉위는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우즈나가 43세의 나이로 코끼리 사냥 중 죽자 문제가 생겼다. 당시의 1순위 제위 계승권자였던 태자 티하투는 노골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표하는 황권 강화론자였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야자틴쟌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오던 티하투를 못 보고 지나치고 말았다. 야자틴쟌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긴 티하투는 그의 옷에 씹던 껌을 뱉었고, 야자틴쟌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껌 자국이 선명한 옷을 자신의 집에 보관했다. 시간이 흘러 티하투가 자신의 제위를 주장하자 그는 대신들을 소집한 뒤 그 옷을 보여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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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하투가 얼마나 포악한지 아는가? 일전에 내가 그를 못 보고 지나치자 그는 내 옷에 씹던 껌을 뱉었네.

그리고 내가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지."



Myanmar-Lower-House-Parliament.jpg 몽골 제국의 미얀마 정복 - 1

"티하투는 왕이 되기 전부터 승상의 체면을 깎고 그를 무시했다.

그런 자가 황제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대신들은 뜻을 모아 티하투를 구금했다. 그리고 그의 이복동생 민 키웨치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민 키웨치는 평소부터 야자틴쟌을 할아버지라 부를 만큼 가까운 관계였으며, 모친이 천한 선반공의 딸이었기에 비빌 언덕도 없었다. 애초부터 그의 이름 자체가 '개똥 왕자'라는 뜻이었으니, 그가 조정의 손쉬운 꼭두각시가 될 건 의심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황제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라티하파테─민 키웨치는 황제로 즉위한 뒤 이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야자틴쟌에게 어떠한 포상도 내리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야자틴쟌은 나라티하파테의 앞에 나아가 그를 선반공의 손자라고 부르며 왜 자신에게 어떤 보답도 하지 않느냐고 비꼬았다.


그러자 나라티하파테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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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파고다의 첨탑을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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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판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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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첨탑을 세운 뒤 발판은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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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물론 치워 버려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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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첨탑이고 너는 발판이다. 파고다에 첨탑이 세워지듯 나는 제위에 올랐지.
그리고 내가 제위에 오른 이상 너란 존재는 이제 필요하지 않아!"


나라티하파테는 즉각 친위대를 동원하여 야자틴쟌을 포박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리고 그를 제국의 남쪽 끝에 위치한 달라로 귀양보냈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 권력을 틀어쥔 그를 숙청한 후폭풍은 가볍지 않았다.

중앙의 정변을 기회로 지방의 반항적인 영주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야자틴쟌의 힘과 영향력이 필요한 것이 명백했다. 결국 나라티하파테는황후 소 라 운의 제안을 받아들여 야자틴쟌을 사면했다. 야자틴쟌 역시 나라티하파테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며 양자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어쨌건,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나라티하파테는 강력한 황권을 추구한 황제였다. 버간의 황제에게는 파고다를 지어 부처에게 봉헌하는 관습이 있었다. 나라티하파테는 그 어떤 파고다보다 화려한 밍갈라제디 파고다를 세웠고, 거기에 자신은 "3600만 명의 병력을 통솔하고, 3000명의 후궁을 거느리며, 300그릇의 반찬으로 식사를 한다"라는 명문을 새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치세 동안 국고의 상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으며, 파고다 건설을 위해 강제로 동원된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 파고다가 완성되면 제국이 망한다"라는 예언이 떠돌았다.

그리고 그 예언에 부응하듯 어느날 북쪽에서 낯선 옷을 입은 사신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고압적인 어조로 막대한 보물을 요구하며 다음과 같은 서신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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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 왕의 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여도 나는 차별 없이 모든 나라를 사랑하네.
이제 다시 사신들을 보내니사대의 예를 다하여 그대의 자제와 대신들의 자제를 보내게나.
그렇게 오랜 우호를 맺으면 때에 맞추어 평안함을 얻는 일일 것일세.
만일 군사까지 쓰게 된다면 누구에게 좋은 일이겠는가? 왕은 이를 생각하시게.


입조를 협박하는 오만방자한 내용에 나라티하파테는 격노했다. 그는 야자틴쟌의 아들이자 재상인 아난다 핏시의 필사적인 제지에도 불구하고 불손한 사신들을 전부 처형해 버릴 것을 명령했다.

1273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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